🔴 세계 3대 운하 중 하나인 고린도 운하 관광
🔴 사도바울을 기념하는고린도 사도바울 기념교회 관광
🔴 고린도 유적지내에 있는 고린도 고고학 박물관 관람
🔴 고린도 아폴로신전 및 아고라 유적 관광
코린토스 지협을 따라 1881년부터 1893년까지 6.3 km의 길이로 건설되었다. 운하를 이용할 경우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돌아가는 것 보다 700km 정도 운항거리가 줄어들지만, 운하의 폭이 24m, 깊이가 8m로 규모가 작기 때문에 운하를 이용하는 선박은 대부분 관광용 여객선이다.
주후 50~52년에 사도 바울이 이곳에 도착하여 기독교를 전파하고 교회를 세웠다. 그러다 1858년의 대지진으로 말미암아 파괴되어 현재는 로마시대의 유적이 있는 구 고린도와 신 고린도로 나뉘어져 있는데 신 고린도에는 바울 사도를 기념하는 교회가 있다. 교회 왼쪽은 베드로 사도, 오른쪽은 바울 사도의 모자이크가 있고, 교회 입구 우측면에는 대리석 판에 흔히들 사랑장이라 부르는 고린도전서 13장의 1~8절까지 말씀이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다. 실제 사도 바울이 18개월 동안에 복음전파를 했던 곳은 구 고린도이다. 사도행전 18장을 보면 바울이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에 도착하여 바울의 본업이었던 장막을 만들며 안식일마다 복음을 전파하며 지냈던 것을 엿볼 수 있다.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행18:1~4)"
그리스 고린도 유적지(Ancient Corinth)는 고대부터 로마시대까지 세워진 유적으로,B.C 146년 로마군의 침입으로 폐허가 된 고대 도시국가를 B.C 44년 로마 황제 시저가 재건한 로마시대의 유적지라고 한다. 고린도 박물관은 고린도 유적지 내에 있는 박물관으로 1932년에 건립하였다고 하며,개인 박물관으로 생각이 들만큼 의외로 아담하고 규모가 작은 박물관이다.
이 신전은 주전 6세기경에 세워진 그리스의 신전중에서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 다음으로 오래된 신전으로 전통적인 도리스식 기둥이며 기둥이 하나로 된 통기둥이다. 건축 당시에는 38개의 기둥이 있었으나 현재는 7개의 기둥만이 남아 있다.
아테네로 이동 🚌 (약 1시간 10분 소요)
(산토리니 자유관광 계획을 준비하셔서 알찬 1박 2일을 보내세요!!)
- 산토리니 섬의 대표적인 마을 피라 마을 관광
- 산토리니 섬 드라이브
- 산토리니의 전경이 멋있는 산토와인 전망대
- 산토리니 복서쪽 이아 마을에서 가장 로맨틱한 일몰 감상
- 카마리 해변 및 페리사 해변 해수욕장
산토리니는 TV광고에 등장하여 유명해진 에게해 연안의 섬으로 대부분의 집들이 새하얀 벽면과 진한 파란색 지붕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리스의 수많은 섬들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섬으로 손꼽힌다. 잊혀지지 않을 자연과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전설 속의 섬 아틀란티스의 일부로 추정되고 있으며 실제로 산토리니 섬은 가라앉은 화산의 일부이며 1675년경 화산이 폭발하면서 현재의 지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 국내선 타고 아테네로 이동【약 1시간 소요】
🔴 그리스 건축물 중 가장 위대한 작품이자 세계문화유산 1호 파르테논 신전, 아크로폴리스
🔴 최초 올림픽 게임이 열렸던 근대올림픽 경기장
🔴 국회의사당 및 무명용사의 비
🔴 신타그마 광장 등 관광
아크로폴리스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후 아테네의 페리클레스가 아테네를 상징하는 성역으로 자긍심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재건하였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여러 신전이 세워지며 신앙의 중심지였기에 아무나 못 올라 가던 곳이다. 해발 156m가량의 석회암 언덕 위에 서쪽 입구를 제외한 세 방향은 모두 절벽이며 그곳에 성벽을 쌓았고 여기에서 내려다보면 시내가 그대로 보인다.
아크로폴리스 최대의 신전으로 아테네시의 수호신 아테나를 모시던 곳이다. 기원전 438년에 완성이 된 도리아식 양식 최고의 건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이 신전은 얼핏 보아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데 바닥 중앙이 약간 솟아있으며 기둥 사이의 간격도 일정치 않다. 이 것은 당시의 기술자들이 사람 눈의 착시 현상까지 계산하여 멀리서 바라보도록 설계, 축조한 것이라고 한다. 신전 안에는 아테나상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없다.
아테네의 중심광장으로 그리스 전국으로 뻗은 도로의 기점이다. 신타그마는 '헌법광장'이라는 뜻으로 1843년 최초의 헌법이 공포된 것을 기념해 이름이 붙여졌지만 역사는 그보다 더 오래되었다. 쇼핑센터, 호텔, 카페, 식당 등 여러가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에르무 거리, 미트로폴레오스 거리는 대표적인 쇼핑거리이다. 광장에는 찻집과 카페들이 길게 위치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커피나 빵을 먹으면서 여유를 즐기기도 한다.
신타그마 광장 뒤쪽에 위치한 올림픽 경기장으로 1896년 제1회 근대 올림픽이 열린 스타디움이 남아있다. 올림픽 경기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기원전 331년 아테나 대축제 경기장으로 지어진 것을 제1회 근대 올림픽이 열리기 바로 전 해인 1895년에 고대 경기장에 가까운 형태로 복원한 것이다. 2004년에 다시 아테네에서 올림픽이 열린 것을 계기로 다시 복원 및 개선 작업에 들어가 올림픽이 열리는 해 1월에 모든 작업을 마치고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 아테네 관광 후 메테오라로 이동 (약 5시간 소요)
🔴 성삼위, 루사노스, 발람, 그레이트 메테오라 수도원 중 한 곳
🔴 수도원은 요일별로 입장이 달라집니다.
🔴 수도원은 노출이 심한 복장의 경우 입장이 금지될 수 있으므로 복장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소매가 없는 옷, 반바지, 샌들 등...)
메테오라 수도원들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가장 넓은 바위 위에 자리잡고 있는 이 수도원의 규모 역시 가장 크며 오래된 수도원이다.그래서 ‘메갈로’(큰, 위대한)라는 말이 앞에 붙는다. 이 바위의 높이는 해발 613m, 삐니오스 강으로부터 473m, 깔람바까 마을의 중심지로부터는 413m에 이르며 정상의 면적은 50.000㎡ 이다.
🚌 데살로니까로 이동 (약 3시간 소요)
4세기 로마 황제 갈레리우스가 테살로니키 궁전과 무덤 (로톤다)과 함께 정비 한 시설 중 하나로, 이 3개의 시설은 개선문을 중심으로 북동에서 남서로 뻗어 거리로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또한 그 시설 중심부에 있는 갈레리우스 개선문은 황제의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개선문은 벽돌로 표면에 대리석을 붙인 구조로 되어 있으며, 사산 제국을 상대로 승리를 기념하는 부조로 장식되어 있었다. 현재 개선문의 일부만 잔존하고 있다.
레프코스 피르고스(그리스어: Λευκός Πύργος) 또는 화이트타워(영어: White Tower)는 그리스 테살로니키 테르마이코스 만을 따라 세워진 타워이자 도시의 랜드마크이다. 12세기 경 비잔틴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래된 타워를 철거한 후 오스만 제국 시대에 항구의 성벽을 만들 때 개축하였으며, 처음에는 요새, 나중에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1912년 테살로니키가 그리스 령이 되었을 때 타워는 개수되어 하얗게 되어 화이트타워라고 불리게 되었다. 현재 탑 안에는 박물관이 있어서 박물관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테살로니키 해변의 하얀 탑 옆에는 마케도니아의 왕인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이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마케도니아 용병이 20년 동안 원정에 동행한 군마인 부케팔로스에게 말을 타고 가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1973년 모금 위원회의 희생으로 건립되었으며 1974년에 개관했습니다. 팔리니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그것을 만든 조각가 Evangelos Moustakas[1]의 작품입니다. 이 동상은 이탈리아 피스토이아에 있는 "렌조 미켈루치" 주조 공장에서 주조되었습니다. 동상의 높이는 6미터, 무게는 4톤입니다. 받침대를 포함한 전체 높이는 11미터입니다.
🚌 까발라로 이동 (약 2시간 소요)
도시가 만들어질 때(기원전 4세기경) 같이 건축되었던 흔적이 있으며 로마시대인 2세기에 개축되었다. 16세기까지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후에 심하게 파괴되었고 1957-1959년도에 관객석이 복원되었으며 현재는 빌립보 축제가 여름에 개최되고 있다
도로에서 낮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디레클렐’(DIREKLER 터키어로서 `기둥들')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어 지며 바실리카 양식에서 돔이 있는 십자가형의 비잔틴식 교회의 모습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교회 터이다. 현재 남아있는 기둥은 서쪽편의 기둥으로 837년에 불가리아 인들이 점령해 이곳에 글자를 새겼으나 1943년 제거되었다.
전도자 누가에 따르면, 사도 바울은 그리스를 처음 여행하는 49-50년 겨울에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인 빌립보에 도착했다. 그는 매주 토요일 Zygaktis 강둑에 소수의 유대인들이 모이는 장소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여성들이 바울의 설교를 들었으며, 그 중에는 직물 염색을 위한 자주색 상인이었던 소아시아의 Thyateira 출신 리디아가 있었다. 리디아는 바울을 만나 기독교인으로 침례를 받고 후에 기독교 전파를 도운 최초의 그리스 및 유럽 여성이다.
건립 연대는 로마시대의 것으로 5세기 경부터 사도 바울이 갇혔던 감옥(사도행전 16장)이라고 믿게 되었고 후에 그의 생애가 벽화로 그려졌다고 한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바울이 수감된 것으로 여겨지는 곳은 실제로 로마의 물탱크 (cisterna)였으며 나중에 예배 장소로 바뀌었다.
🚌 중식 후 터키 트로이로 이동 (약 4시간 30소요)
트로이아는 그리스 전설에서 말하는 트로이아 전쟁에서의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도시이자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언급되는 지명으로 터키의 서북부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도시이다.
트로이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신화이자 유명한 유적지가 되었으며,주변에서 발굴된 동전과 도자기를 근거로 트로이 목마 모형을 만들었다. 총 9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유적이며 각 층은 시대별로 만들어져 있는 유적인데 트로이 유적이 있다고 추정되는 층은 하인리히 슐리만은 발견 당시 2층이라고 보았으나 1930년대 재조사를 통해 현재는 7층이라고 보고있다. 1996년에 터키 역사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난 후 1998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아이발륵으로 이동 (약 2시간 30소요)
🚌 에게해 최대의 유적지 에페소[EFES]로 이동 【약 3시간 소요】
- 연극과 문화예술 뿐만이 아니라 검투장으로도 사용된 대 극장
- 에페스의 상징인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약 1만 2000권의 장서가 보관되어 있었다.
-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쳐진 코린트식 기둥과 아치의 조각이 아름다운 신전
- 대리석 바닥으로 셀수스 도서관에서 헤라클레스 문까지 뻗어 있는 도로
돌로 만들어진 야외극장으로 로마시대에 현재의 모습으로 증축되어 연극과 같은 공연 혹은 시민회의 등이 열린 곳이다. 약 25,000명정도를 수용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야외 극장처럼 산기슭의 경사와 높이를 이용해 반원형으로 지어졌다. 만들어진 당시 초기에는 공연을 위한 곳으로만 이용되었지만 이후 검투사 혹은 맹수와의 결투가 벌어지기도 하였다고 한다. 또한 기독교적으로는 사도 바울이 선교 중에 이곳에서 수난을 받았다고 한다.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절부터 로마식 극장으로 만들어졌다.
에페소 유적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135년 줄리우스 이퀼라가 그의 아버지인 셀수스를 위해 지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고고학자들에 의해 중요한 유물들이 전부 오스트리아로 옮겨져 현재는 복제품만 존재하고 있다. 도서관은 많은 부분이 무너졌지만 외벽은 아직도 굳건히 서 있으며 벽에는 화려한 문양과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발견 당시12000여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던 대형 도서관이었으며, 만들어질 당시에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페르가몬 도서관과 같이 세계 3대 규모의 도서관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도미티안 신전이후 두 번째로 로마 황제를 위해 만들어진 신전이다. 2세기 경에 지어진 이 건물은 하드리안 황제와 에페소의 시민, 아르테미스 여신을 위해 지어졌다. 건물은 다른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부분 손실되었지만 남아있는 부분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첫번째 문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운명의 여신 니케의 조각이 있고 두번째 문에는 메두사가 조각되어있다. 메두사의 얼굴은 부적과도 같이 여겨져 그리스나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것들에는 조각으로 남겨져 있기도 한다.
그리스인들이 15세기 무렵에 이주해 형성한 마을로, 이곳의 지명은 '즐거움'을 의미한다. 현재 주민은 약 600명 정도이며 대부분이 그리스계이며 셀추크의 '와인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있다 쉬린제 마을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리스풍으로 꾸며져 있고, 산비탈을 따라 조성된 마을의 모든 건물이 흰 회벽에 붉은 기와 지붕을 하고 있다. 특산물로는 올리브, 포도주, 각종 과실주 등이 유명하다. 올리브 나무와 포도 나무들이 울창한 동화속 마을같은 쉬린제 마을에 가면 와인 과실주를 시음 및 구입할 수 있다.
🚌 쿠사다시로 이동 【약 40분 소요】
🚌 조식 후 파묵칼레[PAMUKKALE]로 이동 【약 3시간 소요】
파묵칼레의 뜻은 터키어로 파묵이 목화를 뜻하고 칼레는 성을 뜻하므로 목화성이란 뜻이다. 석회층으로 인해 만들어진 환상적인 경관과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의 풍부한 볼거리가 절묘하게 조합된 곳이다.파묵칼레[PAMUKKALE]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유적지 관광
- 로마 제국의 고위 관료들을 위한 여름 휴양지이자 신전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유적지
- 석회질의 온천수가 오랜 세월 산비탈에 침전되어 형성 된 대규모 석회 언덕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190년 페르가몬의 왕조였던 유메네스 2세에 의해 만들어져 로마 시대의 온천지로서 2, 3세기에 가장 번영했다. 이 곳에서는 지면에 생긴 깊은 구멍으로 부터 유독한 가스가 분출되고 있는데 성직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이겠지만 자신들은 괜찮다고 믿었다. 이 내용은 '신성한 장소'의 옆에 있는 분수에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 130년에 이곳을 정복한 로마인에 의해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인 히에라폴리스라는 명칭이 만들어졌다.
수 천년 동안 지하에서 흘러 나온 뜨거운 온천수가 산의 경사면을 따라 내려가면서 지표면에 수많은 물웅덩이와 종유석, 석회동굴 등을 만들었다. 물에 포함되어 있는 미네랄 성분이 지표면을 부드러운 백색 석회질로 덮어 버려 아름다운 지형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아름다운 경관 때문에 고대에는 성스러운 지역으로 여겨졌으며, 로마시대에는 온천으로 유명했다. 아침에는 푸른 빛, 저녁에는 붉은 빛으로 물들어 보는 사람들이 모두 다 감탄하기도 한다.
파묵칼레 윗쪽은 히에라 폴리스 고대도시 유적지 입니다. 이곳은 너무 넓고 광활해서 바쁜 패키지 일정으로는 보통 언덕위에 자리잡은 원형극장 한곳 보고 오면 시간이 거의 다 됩니다. 연세가 있으시고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을 위해 전동카트가 있답니다. 전동카트 타고 가이드 안내 받으면 편안하게 고대 유적지를 관광 하실 수 있어요..
(온천 호텔의 시설을 갖춘 호텔에서는 간단한 온천욕이 가능하므로 수영복과 수영모 준비)
🚌 조식 후 안탈리아[ANTALYA]로 이동 【약 4시간 소요】
카리브해는 칸쿤이 있다면 지중해엔 '안탈리아'가 있다. 아름다운 해변과 주변에 로마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어서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많은 여행자가 몰리는 곳이다. 안탈리아 지방은 터키에서도 경치좋기로 유명한 곳!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터키 도시로 인구 약 220만명이 살고있는 도시이다. 카브리해에는 칸쿤이 있다면 지중해엔 안탈리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온화한 날씨와 아름다운 해변이 매력적인 도시다. 로마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 볼거리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도시자체의 치안과 인프라가 좋은 편으로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많은 여행자가 몰리는 곳이다. 매력적인 도시로 이스탄불 다음으로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터키의 도시이다.
13세기에 만들어졌다. 셀주크 투르크 시대의 것으로 이슬람 사원 위에 세워진 것이다. 이 사원 또한 비잔틴 제국시절에는 교회로 사용이 되다가 셀주크 투르크시대에 이슬람사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지사각 받침대위에 만들어진 45m의 높이의 이 첨탑은 기둥이 세로로 홈이 파져 있고 아래 부분은 돌로, 위 부분은 벽돌로 그리고 푸른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본래 동로마 시대 교회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는데, 셀주크 왕조시대에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첨탑을 세운 것이다.
130년에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이 도시를 방문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구시가지 입구에 있으며 아름다운 조각이 새겨진 3개의 아치가있어 '위츠 카프라르(3개의 문)' 라고도 불린다. 이 하드리아누스 문은 지면보다 낮은 곳에 있는데 이것은 구시가지 지면 아래에 로마시대의 유적이 묻혀있었던 것을 말해준다. 중앙 문 아래는 유리로 덮여져 있으며 양 옆으로는 마차자국이 남아있다. 문의 양쪽으로는 사각형의 탑이 있는데 오른쪽 탑은 13세기의 셀주크의 술탄이 만든것이다.
약 1시간 정도 지중해를 항해하며, 안탈리아의 풍광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중해를 배경으로 타이타닉의 한장면 처럼 인생샷을 남겨보세요.
약 1시간 정도 2,365m 올림포스 산 정상에 올라 스타벅스 커피 한잔의 여유와 인생샷을 남겨보세요.
🚌 조식 후 콘야[KONYA]로 이동 【약 4시간 소요】
카파도키아에서 악사라이를 지나 콘야로 가는 길목에 실크로드를 따라 동방에서 서방으로 오가며 물건매매, 장사를 하던 상인들에게 숙박, 식사를 제공 했던 '오브룩 한'의 뒤쪽에 있는 아름다운 호수이다. 오브룩 한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의 천지와 같이 큰 원에 파란색의 물이 고여 있으며 원래는 지하수가 흐르던 곳이었으나 지진으로 인해 땅이 꺼지면서 그곳에 지하수가 새어 나와 호수가 생겨났다고 한다. 직경 1km, 깊이는 200m에 달하는 호수이다.
카라반사라이는 옛 실크로드의 길목마다에 있던, 대상들이 먹고 묵으며 쉬어가던 숙소이다. 낙타가 하루동안 걸을 수 있었던 거리인 45km마다 위치하고 있었으며 그곳에는 대상들의 숙소, 낙타가 쉬는 공간, 목욕탕, 시장역할 공간인 마자르 등의 편의 시설들이 있었다.
🚌 중식 후 가파도키아[CAPPADOCIA]로 이동 【약 2시간 30분 소요】
- 30여개의 석굴도시가 있는 카파도키아의 상징인 기암괴석들이 자리잡고 있는 장소
- 카파도키아의 상징인 기암괴석들이 자리잡고 있는 장소이자 스머프 마을의 배경
- 로마의 핍박을 피해 기독교인들이 숨어살던 곳이며 지금은 비둘기집으로 가득한 곳
- 기독교인들이 로마와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개미집과 같이 만들어 놓은 지하 대도시
※ 실제 탑승 소요시간은 약 30~40분이며 탑승준비 시간, 이동하는 시간 등이 더 추가로 소요될 수 있습니다.
※현지 예약상황과 기상상황이 좋지 않을경우 손님들의 안전을 위해서 진행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열기구 투어는 고객님들의 동의서 작성 후에 진행됨을 참고 부탁드립니다.
뾰족한 바위라는 뜻의 우츠히사르는 60 m의 높은 성체이다. 바위표면에는 비둘기 집이라고 불리는 구멍이 뚫려있으며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어있다. 천연의 요새이기도 한 이 곳은 최초로 히타이트인들에 의해 발견되어 페르시아인, 마케도니아인들에 의해 개발되고 비잔틴인들이 더욱 효용화시켰다.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지형이어서 방어하기 쉬운 이 곳은 그 내부의 땅속 수 백 미터까지 우물을 파고 지하수를 퍼 올릴 수 있어 더욱 요긴한 요새가 되었다.
지프를 타고 괴레메 계곡, 로즈벨리 등 기암괴석이 펼처진 골짜기 깊숙한 곳으로 이동하여 환상적인 배경에서 인생샷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지프를 타고 오프로드를 달리는 체험과 이색적인 배경에서 인생샷을 남길 수 있는 기회를 잡으세요.
카파도키아의 많은 지하도시 중 카이막흐르의 남쪽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하도시이며 카이막흐르와 함께 가장 규모가 큰 지하도시의 하나로 손꼽힌다. 지하 7층 가량에서 약 85m의 아래까지 연결되어 있어 있으며 기원전 700년 이후 기독교인들의 박해를 피하기 위하여 지하도시를 형성하여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깊은 우물』 이라는 뜻의 수직으로 된 구멍이 지하 구조를 관통하고 있으며, 최대 3만명까지 수용이 가능한 대규모 지하도시로 지하도시 안에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 영화 스타워즈의 촬영지로 유명하며 골짜기로 협곡을 이루는 계곡이다. 이곳은 총 길이 3.5km의 하이킹 코스로 이루어져 있어 400여개의 계단과 곳곳에 숨어 있는 절벽 교회 등 다양한 체험거리가 있다.
- 로즈밸리가 분홍색을 띄는 이유는 이곳이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저녁 노을이 드리워지면 더욱 붉게 물들기 때문에 카파도키아 하이킹 코스 중 최고의 백미로 꼽히는 지역이다.
✔️ 【약 1시간 30분 소요】
* 약, 12시간 정도 소요되는 버스이동거리를 약 1시간 30분이 소요되는 항공이동으로 시간 절약!
* 항공기 예약상황에 따라 이즈미르로 이동하거나 일정이 역순으로 변경될 수 있으며 이른 시간 항공탑승 할 경우 도시락으로 대체될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터키의 명동으로 유명한 탁심광장을 가로지르는 빨간색 트램, 탁심에서 유명한 갈라타 타워 조망 카페테리아에서 이스탄불 야경을 감상, 스카이라운지에서 보스포러스 해협 야경을 음료와 함께 감상해 보세요.
- 미참여시 대체일정 : 호텔휴식
- 약 40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군주가 거주한 터키 이스탄불의 궁전
- 비잔틴 건축의 걸작으로 그리스 정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박물관이었으나 현재 사원으로 변경됨
- 터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스만 건축 양식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원인
오스만 제국의 황제(술탄)들이 거주하였던 궁으로 19세기 중반에 돌마바흐체 궁전이 건설되기 약 400년 동안 많은 술탄들이 이 곳에 살았다. 전부 세 개의 문과 네 개의 중정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문은 황제의 문 또는 술탄의 문으로 불린다. 그 곳을 지나면 제 1중정이 나오는데 이곳은 오스만 군주를 지키는 예니체리가 있다고 하여 예니체리마당이라고도 불린다. 두 번째문은 경의의 문이다. 이 곳을 지나면 제 2중정이 나온다. 여기에는 대신들이 국사를 의논하던 디완 건물과 황실 주방인 부엌궁전이 있다.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규모면에서 세계 최고의 위치였으며 비잔틴 건축의 최고 걸작이라고 불리는 건축물이 성 소피아 사원이다. 이스탄불의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터키 사람들은 아야소피아라고 부른다. 비잔틴 제국시대에는 그리스 정교의 본산지였다가 그 후에 오스만 제국이 건설되면서 이슬람 사원으로 개축 되었다. 사원 내부에는 비잔틴 시대의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벽화들이 남아 있는데 이슬람 사원으로 개축 되면서 묻혀졌다가 후에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야야소피아 건너편에 위치한 술탄아흐메트 사원은 1609~1616년 사이에 술탄 아흐메트 1세에 의해서 건설되었다. 6개의 높은 첨탑과 여러 개의 모스크로 구성 되어 있으며 터키에서 최고의 규모를 자랑한다. 높은 첨탑과 엄청난 규모는 관광객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세계 유일의 6개의 첨탑은 이슬람교도가 지키는 1일 5회의 기도와 술탄의 권력을 상징한다.
19세기말에 활약했던 프랑스 작가 피에르 로티는 세계각지를 여행했는데 그중에서도 이스탄불을 무척 좋아했다. 그는 '라비아 카둔 카흐베시'라고 불렸던 이 차이하네에서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면서 소설을 썼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이곳은 '피에르 로티의 차이하네'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가 당시에 집필한 소설은 처녀작인 "아지야데"다. 전망이 매우 좋기 때문에, 케이블카로 왕복 이동하여 시내의 아름다운 모습을 내려다 보기에 좋다.
보스포러스 해안을 따라 600m에 이르는 유럽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대리석 궁전으로, 멀리서보면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여 '바다 위의 궁전' 이라 불리기도 할 정도로 이스탄불 관광 명소입니다.
- 미참여시 대체일정 : 카페 등에서 휴식 및 자유시간
🚌 조식 후 이스탄불 공항으로 이동
😆즐겁고 😊행복한 기억을 간직하고